디스크립션
"엄마, 콘돔 사도 돼요?"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질문일 수 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거나, 당황스러움에 부정적으로 반응한 부모도 있을 거다. 하지만 아이가 이렇게 물었다는 건, 최소한 부모를 신뢰하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기회는 부모가 아이와 성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사춘기 아이와 성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공유해보자.
성 인식 형성의 결정적 순간
우리는 보통 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안 된 채로 부모가 된다. 성은 부끄럽거나 금기시되는 이야기처럼 여겨지고, 그 결과 아이는 질문을 삼키거나 인터넷에 해답을 찾는다. 문제는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정보 중에는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것도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의 성 호기심에 반응하는 첫 태도는 아이의 성 인식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한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이가 갑자기 콘돔에 대해 물었을 때 처음엔 당황해서 '그딴 건 왜 알아?'라고 버럭했어요. 그런데 나중에야 그 질문을 왜 했는지 알게 됐고, 아이와 거리를 둔 건 저였다는 걸 깨달았죠."
이처럼 순간의 반응이 아이에게는 벽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성에 대한 대화는 반드시 감정을 다스린 후에 해야 한다. 아이가 물었을 때 곧바로 정답을 줄 필요는 없다.
감정을 다스린 후에 계속하는 대화
“음, 중요한 질문이네. 엄마(아빠)가 좀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도 될까?”
이렇게 시간을 벌고, 차분하게 자료를 찾고, 아이에게 어떻게 말할지 정리한 후 다시 마주 앉아도 늦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성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고 느끼는 청소년은 성관계 시작 시기를 늦추고, 피임에 대한 인식도 높으며, 보다 건강한 성 가치관을 가진다고 한다. (출처: Journal of Adolescent Health, 2014)
결국 중요한 건, 콘돔을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성적 행동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 첫걸음이 바로 '대화'다.
또한, 아이가 성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시점에서 단순히 "안 돼!"라고만 말하면, 오히려 숨기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상담 사례에서 고등학생 딸이 몰래 피임약을 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딸이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을 원망했지만, 딸은 "엄마는 내가 이런 얘기 꺼내면 혼낼 것 같아서 말 못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화가 닫혀 있으면 아이는 결국 혼자 해결하거나,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
부모가 대화에 참여하는 자세
그렇다면 부모는 어떤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할까?
첫째, 아이를 판단하지 말고 들어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 어떤 질문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었구나"라며 인정해주는 자세는, 아이가 부모를 안전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한다.
둘째, 나의 가치관을 설명하되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네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준비가 되었을 때 건강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라는 식으로 아이의 생각과 경험을 인정하며도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셋째,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자. 피임의 원리, 성병의 위험성, 감정과 신체의 관계 같은 정보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니라, 건강 교육의 일부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 건, 성 이야기가 딱 한 번으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성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환경과 친구, 미디어의 영향으로도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관계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부모 자신의 성 경험이나 교육을 되돌아보기
마지막으로 부모 자신이 자신의 성 경험이나 교육을 돌아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부모가 자신도 성에 대해 혼란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지금은 함께 배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아이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성은 감추거나 숨겨야 할 주제가 아니다. 생명과 사랑, 책임과 존중이 어우러진 소중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구보다 먼저, 따뜻하게, 안전하게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부모'다. 아이가 조심스레 던진 질문에 놀라기보단,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자.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자.
“물어봐줘서 고마워.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