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립션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 부모는 동화책을 펼쳐 든다. "옛날 옛날에, 한 작은 마을에…"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부모도 있고, 등장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바꿔가며 생동감 넘치게 읽어주는 부모도 있다. 과연, 감정을 실어서 읽어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까? 아니면 단조롭게 읽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많은 부모가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다. 어떤 방식이 아이의 언어 발달과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될지, 연구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깊이 알아보자.
감정을 실어 읽어줄 때 아이에게 주는 영향
1. 정서적 공감 능력 발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감정을 배우는 존재다. 생후 몇 개월만 지나도 부모의 얼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유추하며, 말보다 목소리의 억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Feinberg et al., 2006). 그렇다면 책을 읽어줄 때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것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3~7세 아이들은 이야기를 마치 실제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감정을 실어 읽어주었을 때 아이들이 이야기 속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고 한다(Quinn et al., 2018). 예를 들어, 슬픈 장면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천천히 읽어주고, 기쁜 장면에서는 밝고 경쾌한 톤으로 읽어주면 아이들은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내 경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네 살 난 우리 아이에게 아기 돼지 삼형제를 읽어줄 때, 늑대가 "하아아아! 후우우우~!" 하고 집을 불어 날리는 장면에서 목소리를 과장되게 내니 아이가 너무 놀라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이후에는 늑대 목소리를 조금 부드럽게 조절해서 읽었더니 아이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이처럼 아이에 따라 감정의 강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언어 이해력과 표현력 향상
감정을 실어 읽어주면 아이는 단순한 단어의 뜻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가진 뉘앙스까지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예를 들어, "슬프다"는 단어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슬픈 톤으로 "너무 슬퍼!"라고 말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감정을 실어 읽어주는 부모의 아이들이 단어를 더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다(Johnson & Lewis, 2019).
실제로 내가 아는 한 부모님은 항상 책을 읽어줄 때 차분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를 사용했는데, 그 집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반면, 또 다른 부모는 목소리를 다양하게 조절하며 읽어주었고, 그 집 아이는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단순한 책 읽기 방식 하나만으로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언어 습득 과정에서 감정의 표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3.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 증가
감정을 담아 읽어주면 아이들은 이야기에 더 집중한다. 한 연구에서는 부모가 감정을 담아 읽어주었을 때 아이의 집중력이 35% 이상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Van Kleeck et al., 2015).
나 역시 아이에게 피터 팬을 읽어줄 때 이를 실감했다. 평소 책을 읽을 때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던 아이가 후크 선장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내 목소리가 낮아지고 긴장감을 주자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과도한 감정 표현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을 실어 읽어주는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1. 내용보다 연기에 집중할 위험
부모가 너무 과하게 연기를 하면, 아이는 이야기의 내용보다 부모의 연기 자체에 집중할 수도 있다. "엄마(아빠)가 어떻게 말했는지"가 기억에 남고, 이야기의 핵심을 놓칠 수도 있다.
2. 과한 감정 표현이 아이에게 두려움을 줄 수도 있음
공포나 긴장감이 있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무섭게 읽으면 아이가 불필요한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빨간 모자의 늑대 장면에서 목소리를 너무 사납게 하면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어려울 수도 있다.
3. 부모의 부담감 증가
매번 감정을 실어 읽어주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피곤한 날이나 바쁜 날에도 항상 연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면, 책 읽기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감정을 실어 읽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렇다면, 감정을 실어 읽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적절한 균형'이다.
- 아이의 반응을 살피면서 조절하기
어떤 아이들은 감정을 실어 읽어줄 때 더 집중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조용한 톤을 선호할 수도 있다. 아이의 성향에 맞춰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 주요 장면에서는 감정을 조금 더 강조하기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나 중요한 감정이 담긴 부분에서는 감정을 살짝 더 강조해주면 좋다. 예를 들어, 기쁜 장면에서는 밝은 목소리, 슬픈 장면에서는 차분한 톤을 사용하는 것이다. - 대화 부분에서는 역할을 구분하여 읽기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라 약간씩 다른 목소리로 구분하면 이야기가 더 생동감 있어진다. 하지만 과도하게 바꾸지는 않는 것이 좋다. - 책을 읽은 후 감정을 이야기해보기
책을 다 읽고 나서 아이에게 "이 장면에서 토끼는 왜 슬펐을까?"라고 질문하면서 감정을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론: 감정을 실어 읽되,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것이 핵심
동화책을 감정을 담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정서적 공감 능력, 언어 이해력, 몰입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한 연기나 억지스러운 표현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아이의 반응을 살피면서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밤,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감정을 조금 더 실어보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