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행동을 처음 인지했을 때, 부모의 마음은 늘 복잡합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줄줄이 일렬로 세워두고, 그것이 조금만 흐트러지면 울거나 다시 맞추느라 분주해진다. 똑같은 말을 하루에 수십 번 반복하거나, 특정 노래 한 구절만 집착하듯 들으려 하고, 전등 스위치를 몇 번이고 껐다 켰다 하며 집중하는 모습.
이런 행동을 처음 본 부모는 "귀엽다", "호기심이 많구나" 하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 한켠에서 '혹시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걱정을 품게 된다.
반복 행동은 발달 초기 아동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그 행동의 강도와 맥락, 지속 기간, 사회적 반응성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단순한 놀이 성향일 수 있는 반복 행동이 언어 발달 지연이나 사회적 관심 부족과 함께 나타날 경우, 전문가들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18개월이 된 우리 아이가 매일 같은 장난감을 반복해서 돌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있을 때 처음엔 ‘집중력이 좋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래 아이들처럼 사람을 따라 웃거나 눈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다는 걸 뒤늦게 알아챘다.
그때부터 ‘이건 혹시…’라는 불안이 시작됐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불안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반복 행동이 모두 자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행동이 발달 전반에서 나타나는 지연이나 차이와 함께 있을 경우, 조기에 개입하는 것이 아이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복 행동 그 자체보다, 함께 살펴야 할 '신호'들이 있어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핵심 특성 중 하나는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양상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사회적 상호작용과 언어 발달 영역에서의 차이가 함께 나타날 때, 전문가들은 이를 초기 신호로 인식한다.
즉, 반복 행동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래와 같은 행동이 동시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반드시 관찰과 평가가 필요하다.
- 시선을 잘 맞추지 않는다
- 이름을 불러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 다른 아이나 어른에게 관심이 없다
- 말 대신 손을 잡아끌거나 울음으로 요구를 표현한다
- 새로운 환경 변화에 지나치게 불안해한다
- 특정 물건이나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무반응하다
- 반복된 행동을 멈추기 어렵고, 방해할 경우 극도로 화를 낸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는 선풍기 날개 돌아가는 것을 20분 넘게 바라보며 한 자리에 앉아 있고, 그 사이 부모가 부르고 불러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한 집중이 아니라 ‘반응성 결여’의 한 징후일 수 있다.
또 어떤 아이는 매일 같은 루틴(예: 같은 시간에 같은 컵에 우유 마시기)을 벗어나면 크게 혼란을 느끼고 울부짖는다. 이런 경우에도 자폐 특성이 의심될 수 있다.
반복 행동이 자폐의 유일한 기준이 아니기 때문에, 관찰의 폭을 넓히고 시간을 두고 아이의 ‘사회성’, ‘상호작용’, ‘언어 반응’을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자폐 진단의 연령도 낮아지고 있고, 생후 18개월부터 진단 가능한 조기 평가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단지 진단을 빠르게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기에 개입했을 때 아이의 언어, 사회성, 자존감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누구도 확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의심되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조금 더 두자’고 미루는 사이, 개입의 황금 시기를 놓치는 부모들도 많다.
내 아이의 행동이 유난히 반복적이고, 다른 발달 지연과 함께 보인다면
한 번쯤은 발달 전문의와 상담해보는 것,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방법이다.
관련해서 자폐와 감각 민감성에 대해 다룬 [태동이 너무 많아요, 괜찮을까요?] 글도 참고할 수 있다. 태아기부터 감각에 민감했던 아이들이 출생 이후 보여주는 행동 특성과 관련된 사례들을 다루고 있다.
조기 개입은 '진단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 '발달의 기회'예요
많은 부모들이 ‘자폐’라는 단어에 불안을 느끼며 상담이나 진료를 미루기도 한다. ‘혹시 아닐 수도 있는데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진단받으면 낙인찍히는 건 아닐까?’ ‘지금 잘 지내고 있는데 굳이 병원까지 가야 할까?’ 하지만 자폐는 ‘진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에 따라 어떤 지원과 접근이 가능한지를 결정짓는 출발점이다. 조기 개입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고하다.
"생후 24개월 이내에 개입을 시작한 자폐 아동의 경우, 언어 및 인지 발달에서 유의미한 향상이 있었다."
(출처: Dawson et al., 2010, Early Start Denver Model Intervention Study)
이는 진단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필요한 시기에, 충분히 제공해주는 것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내가 상담했던 한 부모는 아이가 20개월쯤 되었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손을 펄럭이고, 눈을 맞추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처음에는 ‘감각이 예민한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생후 30개월 무렵에도 상황이 계속되자 전문가의 평가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경계 영역 진단을 받고, 이후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병행한 덕분에 지금은 또래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그 부모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혹시 아니더라도 치료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경험이더라고요.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한 게 가장 다행이었어요.”
💛 반복 행동이 걱정된다면, 혼자 걱정하지 말고 도움을 구하세요. 진단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아이가 '이해받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 곁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경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