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걱정과 사랑으로 말하지만, 나는 부끄럽고 불편했어요
어느 날, 별안간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요. "혹시 요즘 궁금한 거 있어?", "몸에 변화가 생기면 꼭 말해줘야 해", "혹시 친구들이 이상한 걸 보여주면 바로 알려줘야 해."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고 얼굴이 뜨거워지면서 어딘가로 숨고 싶어져요. 머릿속은 "아, 제발 그 얘기는 하지 말아줘!"로 가득 차고, 대답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말문이 막히죠.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애매한 감정도 남아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너무 민망해서 그 순간을 빨리 지나가고 싶어요.
이 반응은 정말 당연해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성’이라는 주제는 내게 너무 민감하고 중요한 영역이 돼요. 몸이 변하고, 감정이 요동치고,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도 점점 복잡해지는데, 그 모든 걸 부모님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내 사적인 세계를 침범당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요. 게다가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알아야 했던 존재예요. 그런 부모님 앞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어쩌면 ‘나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 성적인 감정을 가진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같아지죠. 그건 너무나 큰 심리적 부담이에요.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피터슨(Christopher Peterson)은 청소년기의 정체성 발달에 대해 "개인은 사적인 감정과 신체적 변화가 외부로 노출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고 설명했어요. 이 시기 아이들은 ‘나만의 비밀’, ‘나만 아는 감정’을 지키려는 욕구가 아주 강해요. 그래서 부모님의 관심이 아무리 따뜻한 것이어도, ‘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접근할 때는 그 자체로 부끄러움과 거북함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이걸 비정상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오히려 그 민망함은 내가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추고 있다는 신호예요. 이제 나는 부모님과 구별되는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키우고 있고, 내 몸과 마음을 스스로 관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러니 당황했던 나, 숨고 싶었던 나, 대답을 피했던 나, 그 모든 반응은 정상이에요. 부끄러워도 괜찮고, 답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건 내가 지금 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에요.
민망함은 감정일 뿐, 성에 대한 이야기를 막을 이유는 없어요
부모님이 성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드는 민망함은 너무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건 아쉬운 일이에요. 부모님이 꺼내려는 대화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정보일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는 자극적인 이야기나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지만, 부모님은 사랑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에게 ‘나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려고 해요.
2020년 유니세프 아동성교육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올바른 성 가치관을 갖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요인은 학교 교육보다도 가정에서의 솔직하고 따뜻한 대화였다고 해요. 특히 부모와의 신뢰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성교육은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기결정권을 높이고, 위험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워줬어요.
물론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힘들 수 있어요. 말을 꺼낸 부모님도 사실은 많이 망설였을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꼭 전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을 가능성이 커요. 부모님 세대는 어쩌면 성에 대해 배운 적이 거의 없는 세대일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위해 꺼낸 이야기라면, 그 진심만큼은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민망하고 부끄럽더라도, 모든 대화를 피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서 말을 할 수 없다면, 나중에 편하게 문자나 메모로라도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요. "엄마, 아빠, 그때 민망했지만 그래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라는 한마디는, 부모님에게도 큰 위로가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지금은 민망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성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가 아니라 ‘나를 아끼는 대화’로 자리 잡는 거예요.
민망함을 넘어, 나를 지키는 힘으로 바꿔보아요
사춘기에는 ‘성’이라는 주제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돼요. 단순히 몸의 변화나 감정의 변화뿐 아니라, 내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될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어떤 경계를 설정할지와 연결된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래서 부모님이 성 이야기를 꺼낼 때 드는 민망함도, 사실은 ‘나 자신을 어떻게 지킬까’에 대한 고민이 함께 시작되는 신호일 수 있어요.
내가 지금 느끼는 불편함은 성숙의 일부예요. 성에 대한 대화를 피하고 싶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지만, 그 대화를 통해 나는 ‘내 몸을 소중히 여기는 법’, ‘다른 사람의 경계를 존중하는 법’,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를 보호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이건 학교에서 배우는 성교육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을 수 없는, 정말 소중한 배움이에요.
2017년 미국 심리학회(APA)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와 자연스러운 성 관련 대화를 자주 나눈 청소년은 성적 자기결정권, 동의의 개념, 그리고 성적 건강에 대한 인식이 훨씬 높았다고 해요. 이는 단순히 ‘성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중감과 관계의 질까지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만큼 이 대화는 민망함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어요.
그러니 다음번에 부모님이 또 성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면, 너무 겁내지 말아요. 꼭 모든 걸 다 대답할 필요도,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내 몸에 대한 이야기’, ‘내 마음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민망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지고, 대신 ‘내가 내 몸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은 단단하게 남을 거예요.
💛 부모님이 성 이야기를 꺼냈을 때 민망하고 불편했던 너, 괜찮아요. 그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그 민망함을 껴안고, 내 몸과 내 마음을 아끼는 힘으로 바꿔가면 돼요.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은, 네가 스스로를 더 잘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소중한 경험이에요. 너는 잘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성장의 모든 순간이 결국 너를 더 빛나게 만들어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