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당황스러운 순간, 아이는 부모의 반응을 기억합니다
“엄마, 애기는 어떻게 생겨요?”
“포르노 봐도 돼?”
이런 질문은 그 어떤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부모를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거나 갓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 말은 예고 없이 찾아오곤 한다.
당황한 나머지 대충 얼버무리거나, “그런 건 나중에 커서…”라고 넘기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순간은 아이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
아이가 성에 대해 물어본다는 건, 그만큼 부모를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진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부모가 아이와 성에 대한 건강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하지만 부모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아직 이르지 않을까?’, ‘이런 건 꼭 지금 이야기해야 하나?’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 감정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감정이 그대로 반응이 되었을 때다.
“그런 질문 하지 마.”
“그런 건 더 크면 이야기해줄게.”
“누가 그런 걸 가르쳤어?”
이런 반응은 아이에게 ‘내가 뭔가 이상한 말을 했구나’, ‘부모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만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성에 대한 호기심을 느낀 청소년 중 약 70%가 인터넷과 친구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고 응답했고, 부모를 1순위로 꼽은 경우는 20%에도 미치지 못했다(출처: 『청소년 성인식 및 정보 습득 경로 조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2).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가 당황하거나 불편해할 것 같아서다. 결국 성에 대한 질문보다 더 중요한 건, 부모의 반응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성적 호기심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라는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성적 호기심은 잘못된 것도, 빠른 것도 아니다. 몸이 변하고 감정이 요동치며, 다양한 정보에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궁금해진다. 이 호기심은 감추거나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따뜻하게 다뤄야 할 성장의 한 과정이다. 부모는 종종 ‘자극될까 봐’, ‘성관계를 알려주는 건 너무 이르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성에 대한 대화는 단순히 생식이나 피임 정보를 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 더 중요한 건, “내 몸은 소중하고, 타인의 몸도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태도를 알려주는 일이다.
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엄마는,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친구가 야동 보여줬는데 기분이 이상했어”라고 말했다고 했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날 밤 아이의 방에 들어가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연기하는 거야. 진짜 사랑이나 관계는 그런 게 아니야. 성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서로 동의하고 존중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 아이는 혼자서 고민하기보다, 엄마와 이야기하며 건강하게 자신의 감정과 몸을 이해해나가고 있다.
성적 호기심은 억누르거나 금지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그럴 수 있어, 당연해”라고 말해주는 순간, 아이의 마음은 열리고, 성에 대한 인식도 왜곡되지 않고 성장하게 된다.
미국소아과학회(AAP)는 사춘기 아이의 성적 호기심을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 부모가 “정확한 정보 제공, 긍정적인 반응, 정서적 공감”의 세 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출처: AAP, HealthyChildren.org, 2020).
아이의 몸과 감정이 함께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가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진짜 성교육의 시작이다.
어떤 말은 상처가 되고, 어떤 말은 지지가 됩니다
사춘기 전후, 아이들은 부모보다 친구와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성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 감정과 몸 사이에서 혼란을 겪기도 한다. 이 시기의 부모 역할은, 설명자가 아니라 지지자에 가깝다.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떤 말을 해주느냐가 아이의 성 인식뿐 아니라 자존감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말은
“그런 얘기 왜 해?”,
“너 아직 애야”,
“누가 그런 거 가르쳤어?”,
“너도 그걸 봤어?” 같은 비난과 부정의 어투다.
이런 말들은 아이에게 ‘나의 감정은 틀렸다’, ‘나는 이상하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기 어렵다.
반대로 아이가 성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궁금할 수 있지”,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런 장면을 보면 기분이 이상할 수도 있어”
라는 반응은, 아이를 정상적인 감정 안에 머물게 해주는 안전지대가 된다.
특히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몸과 감정, 관계, 책임, 경계 같은 요소들을 함께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성은 단지 몸의 일이 아니라, 마음의 일이기도 해. 서로 좋아하고, 존중하고, 동의할 때만 이루어져야 해. 그리고 어떤 것도 강요되면 안 되고, 너의 감정이 불편하다면 멈춰야 하는 거야.”
이런 문장은 성에 대한 두려움이나 왜곡된 기대를 줄여주고,
자기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자기결정권을 키워주는 데 도움이 된다.
🌱 성은 금기가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에요. 그 시작은 따뜻한 한마디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