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어린데 벌써 성교육을 해야 하나요?”라는 부모의 걱정부터
“아직 초등학생인데, 성에 대해 알려주기엔 너무 이르지 않을까?”
많은 부모들이 초등 고학년 자녀를 두고 가장 고민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성교육이다.
누구나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스스로 궁금해하면, 그때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초등학교 4~6학년은 이미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선 시기다. 실제로 초경이나 몽정을 경험하는 아이들도 이 시기부터 점차 늘어난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의 자료에 따르면, 여아는 평균 만 10.5세, 남아는 만 11세에 2차 성징이 시작되며, 개인에 따라 빠르게는 9세 전후부터 변화가 나타난다. 부모가 아직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아이는 이미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성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성교육은 ‘언제’ 해야 할까를 고민하기보다는,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자연스럽게 시작해야 하는 필수 교육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게다가 인터넷, 유튜브, 친구들로부터 왜곡된 정보를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부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아이가 올바른 기준 없이 유해 정보에 노출되기 전에, 집에서 따뜻하고 안전한 방식으로 먼저 성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성교육이 ‘성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몸의 변화 이해, 사생활 보호, 타인 존중, 자기 몸에 대한 책임감과 권리를 알려주는 폭넓은 개념이다. 이 모든 내용을 아이가 스스로 탐색하기에 앞서, 부모가 먼저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성 인식은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 부모가 먼저 받아들여야 해요
많은 부모가 성교육이라는 말을 듣고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이와 관련된 건강한 대화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때는 그런 걸 부모님이랑 이야기하지 않았잖아.”라는 말 속에는, 성에 대한 부끄러움과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훨씬 빠르게 성에 노출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원한다.
한 엄마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화장실에서 갑자기 긴 시간 머무는 걸 이상하게 여겼고, 우연히 스마트폰 사용기록을 보다가 성인 콘텐츠를 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아이가 친구에게 들은 단어가 무엇인지 궁금해 검색한 것이 계기였다는 걸 알고, 엄마는 아이에게 차분히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 영상은 왜 보면 안 되는지”, “성은 나쁘거나 숨겨야 할 게 아니라 건강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이 수준에 맞게 전달했고, 이후 아이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더는 몰래 인터넷을 찾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성교육은 아이의 무지를 꾸짖거나, 섣불리 겁주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아이에게 스스로 물어볼 수 있는 ‘안전한 대화 상대’가 부모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아동·청소년의 성인식 및 성교육 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아이들은 성에 관한 질문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고 싶은 대상으로 ‘부모’를 꼽지만, 실제로 성 관련 대화를 자유롭게 나누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0% 미만이었다. 즉, 아이는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만, 부모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다.
특히 초등 고학년 아이들은 질문의 내용보다 그 질문에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그런 거 왜 궁금해?” “아직 그런 건 몰라도 돼”라는 반응은 아이가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갖게 만들고, 더 이상 부모에게 질문하지 않게 만든다. 반면 “좋은 질문이야. 네가 궁금할 수 있지”라고 말하며 여유를 가지면, 아이는 자기 궁금증이 부끄럽지 않다는 걸 배우고, 부모를 더 신뢰하게 된다.
성교육은 ‘성’만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권리’를 함께 가르치는 것
초등 고학년 시기의 성교육은 단지 성기관이나 생리, 임신 같은 신체 정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기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내용은 사생활 보호, 타인과의 경계 설정, 동의의 중요성, 그리고 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다.
예를 들어 “누가 너의 몸을 만질 때 기분이 이상하거나 싫으면, 꼭 거절하고 엄마에게 말해줘야 해” 같은 문장은, 성폭력 예방 교육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아이는 자기 몸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배우고, 위험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이는 단지 ‘성’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 인권 보호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 할 것 하나, 성교육은 단 한 번의 대화로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지속적 대화라는 점이다. 아이가 텔레비전이나 책, 인터넷을 통해 관련 장면을 접했을 때, “이런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니?”, “이건 어떻게 생각해?” 같은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음경, 질, 월경, 사정 등의 단어를 숨기거나 왜곡된 표현으로 대신하는 것보다는, 아이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면서도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는 태도가 건강한 성 인식 형성에 도움을 준다.
성교육은 ‘교육’이지만 동시에 ‘대화’다. 그리고 그 대화의 시작은 부모가 먼저 마음을 열고, 성을 터부시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내 몸을 아끼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건강한 성교육의 첫걸음이다.
🌱 아이의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이 아이에게는 성장의 기회일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