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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기다리던 마음이 한순간의 출혈과 함께 무너지는 순간, 여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겪게 됩니다. 특히 두 번, 세 번 연이어 유산을 겪게 된다면 ‘내 몸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자책과 혼란이 더해지죠. 그런 상황에서 자주 언급되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APS: Antiphospholipid Syndrome)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생소하고 무서운 이 질환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우리 몸이 자신을 공격해 임신 유지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 병명을 처음 접하는 순간은 유산 진단을 받은 이후입니다.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 중에는 알아차리기 어렵고, 반복된 유산이라는 결과를 통해서야 뒤늦게 진단받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이 어떻게 반복 유산을 일으키는지,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게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 지금부터 하나씩 차근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몸이 태아를 공격한다? 항인지질 항체의 작동 원리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은 쉽게 말해, 우리 몸 안에서 ‘지질’을 적으로 오인하는 항체가 만들어지는 상태입니다. 지질은 세포막을 구성하는 필수 성분인데, 이 지질을 공격하는 항체가 만들어지면 염증과 응고 반응이 활성화되어 혈액이 쉽게 굳는 혈전 상태로 이어집니다. 특히 이 항체들은 혈관 벽이나 태반 내 세포에 작용하여 미세혈전을 유발하고, 이는 태아에게 혈류 공급을 방해하게 됩니다.
임신 중에는 원래도 혈액이 응고되기 쉬운 상태가 되는데, 항인지질 항체까지 있다면 그 위험은 배가됩니다. 태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 태아에게 충분한 산소와 영양이 전달되지 않아 성장 지연, 사산, 조기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임신 초기 10주 이내에 유산이 반복된다면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을 의심해볼 필요가 큽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할 때 APS를 진단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 10주 미만 유산을 3회 이상 반복한 경우
- 20주 이후 사산을 한 차례 이상 경험한 경우
- 태반 조기 박리, 자간전증, 조산 등 태반 부전으로 인한 임신 합병증이 있었던 경우
- 혈액 검사에서 항인지질 항체(루푸스 항응고인자, 항카디오리핀 항체 등)가 12주 간격으로 2회 이상 양성일 경우
출처: American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ecologists, Practice Bulletin No. 132 (2012)
반복 유산을 겪는 여성,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받을 수 있을까?
반복 유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명확한 이유 없이 계속해서 유산이 반복된다면 전문의는 면역 관련 검사를 권유하게 됩니다.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의 진단은 혈액검사로 이루어지며, 다음 3가지 항체가 중심입니다:
- 항카디오리핀 항체
- 베타2-글리코프로테인 1 항체
- 루푸스 항응고인자
이 항체들은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반복 유산 후에 전문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진단이 내려진 이후 임신을 계획하는 경우, 항응고 치료를 병행하게 되는데 이 치료가 임신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치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저용량 아스피린: 혈소판 응집을 막아 혈전 위험을 줄입니다.
- 헤파린 주사: 강력한 항응고제로, 태반 내 혈류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해줍니다.
- 면역조절요법: 일부 환자에게는 면역억제제나 고용량 면역글로불린(IVIG)도 고려됩니다.
이 치료법은 단순히 유산을 막는 것을 넘어 건강한 출산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높여주며, 임신 초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70~80% 이상의 임산부가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한 것으로 보고됩니다. 이러한 수치는 반복 유산을 경험한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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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이 있어도 건강한 출산이 가능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고 깊은 절망에 빠지지만, 이 질환은 진단과 치료법이 잘 정립되어 있는 편에 속합니다. 과거에는 진단되지 않은 상태로 유산을 반복해 마음의 상처만 키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비교적 간단한 혈액검사를 통해 조기에 원인을 밝힐 수 있고, 효과적인 항응고 치료를 통해 건강한 임신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 유산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입니다. 전체 가임기 여성의 약 1~2%가 항인지질 항체를 갖고 있으며, 이 중에서도 실제 유산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관리 여부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조기 진단과 전문의의 꾸준한 관리를 통해, 이 질환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출산을 준비하며 한 번의 실패를 겪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픔이 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 유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중 하나가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입니다. 정기검진에서 놓치기 쉬운 질환이므로, 반복적인 임신 실패를 겪었다면 용기를 내어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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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항인지질 항체 증후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아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는 조용한 적입니다. 그러나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이뤄진다면, 건강한 출산까지의 길은 충분히 열려 있습니다. 반복 유산이 있을 때 자책만 하기보다는, 자신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 질환을 이겨내고 건강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